2009년 9월 3일 목요일

아마츄어증폭기는 모더니스트인가?

부산에서 "수성랜드"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미 몇 주전부터 여러 가지 일들로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된 상태였다. 노트북 컴퓨터의 스피커는 조악한 사운드밖에 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앨범을 들으면서 마음에 큰 위안을 받았다.

이 앨범은 나를 금세 웃게 만들었고, 또 시간이 지나자 울게도 만들었다…

수성랜드가 실제로 어떤 곳인지 가본 적 없는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이 음반을 들어보면 아마도 대도시의 변두리쯤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수성랜드, 먼데이 로봇). 감수성을 주체할 수 없어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 수밖에 없는, 시한이 무기한 연장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앨범 속 화자, 아마도 아마추어 증폭기는 심지어는 심각하게 수줍은 성격이어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아무것도 없는 밤거리를 걷게 된 절체절명의 기회에, 섹스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손만 잡고 세계 끝까지 걷기만 하다가 날이 새는 그런 류의 인간이다(룸비니). 끝내 이루지 못할 육체적인 사랑은 그저 꿈에서나 가능할 것 같고(오늘 밤도..), 우주에서 돌아온 친구 정도는 돼야 즐길 법한 밤샘 레이브 파티에 대한 부러움에 친구를 방구쟁이로 몰아세우기까지 한다(사교댄스). 사랑에 서툰 주인공은 마네킨(마네킨), 꿈 속의 산삼 캐는 처녀(오늘밤도…), B급 영화 속의 여배우와 닮은 '너'(B사감과…) 와 같은 비현실적 존재가 환상 속에서나마 가능한 사랑의 대상이다. 그래도 마네킨은 실체라도 있기에 "북쪽접근"이라는 거창한 제목하에 한번 끌어안아보고는 "지금 이순간 그대 품"이라고 시적으로 미화, 즉 자위한다. 이쯤 되니 주인공은 절대로, 절대로 리얼리스트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닌게아니라 이 지독한 로맨티스트 사춘기 문학 소년의 태도는 다분히 모더니스트적이다. 어느덧 나이가 들어(마음은 아직 사춘기지만) 형사라는 거친 직업세계도 경험하게 되고(김 형사!... '앗, 그럼 한받 씨 성이 김가인가? 김한받?), 술 한잔 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일에 치인 나머지 오래 못 가 사직한 후 잠시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다가(청포도 맛케익) 연신내에서 마지막 구애에 실패를 경험하면서(연신내 탈곡기) 비로소 시인의 모습으로 돌아선다. 이 시인은 언어의 유희, 쉽게 말해 말장난을 즐기는 아방가르드적 초현실주의를 표방하는 모더니스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언어 유희는 '농협'에서 시작되어 이 앨범의 마지막 곡까지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유희의 내내 주인공은 우울함과 싸운다. 어린 시절 마네킨을 좋아했던 이유(마네킨), 그 때문이다. 아버지는 우울하게 침묵하지만(수호성 처녀), 나의 앞길은 처녀의 별빛, 다름아닌 자신과 같은 처녀성을 지닌, 마네킨이 밝혀주리라 믿는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울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 끝없이 자기암시를 갖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극은 그저 코믹한 사운드의 경극에 지나지 않고(경극), 사계절이 슬퍼도 나는 숲 속에서 빛나는 열매를 따먹었기에 취해서 말한다. '슬프지 않는 사람이 좋아요'라고. 스스로 삐에로가 되어 '우울한 4차원'의 기분을 산화공덕의 자세로 가시는 길마다 뽑아주겠다 하고, '명랑한 밤의 미로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 명랑한 미로는 다름아닌 시적인 언어유희이고 아마추어 증폭기가 펼치는 공연이리라. 정말 상황이 안 좋을 때조차, 그저 하는 일은 몸을 의식하는 것(추운 공기). 우울에 빠지지 않으려는 발악에 가깝다. 고된 행군 속에서도 오로지 '그대 생각뿌운'을 통해 우울함으로부터 탈출 성공. 그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의식은 유인원이다. "just modern happiness"!(유인원). 모더니스트이자, 시인이자 음악가인 유인원의 행복…

한국 사회에서 시인으로, 음악가로 산다는 것은 일단 형이하학적인 레벨에서 불가능하다(경제적 유산을 누리면서 재능을 겸비한 비현실적 극소수는 제외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증폭기는 끝없이 그 우울한 현실을 부정하며 모더니스트로서 놀라운 작품을 쏟아내는 뛰어난 아티스트이다. 단 하나의 리듬으로 수많은 아름다운 곡을 변주하는 아마추어 증폭기의 작곡능력은, 함께 음악을 하는 나로서 경외감을 감출 수 없게 한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이 앨범을 듣고 진짜로 울었다. "룸비니"를 듣다가 그 아름다움에 감동을 하고 말았다. 감동은 자기암시적이고 또 반복을 거듭할수록 증폭되는 성질의 것이어서, 나는 한동안 이 앨범을 계속 들어야만 할 운명에 빠지고 말았다. 남들이 어떻게 듣건 간에, 나를 울렸던 앨범들은 언제나 내 삶과 함께 지속된다. 좋은 앨범. 아마추어 증폭기에게 감사를.


코코어 이우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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