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일 월요일

2005년 12월 한겨레신문 인터뷰

원맨밴드 ‘아마추어 증폭기’ 한받씨 찾아 홍대앞에서
[100℃르포] 그 노래가 그 노래…기타도 징징 긁어내릴 뿐 고정관념 벗어던지다


한겨레 김소민 기자



» 원맨밴드 ‘아마추어 증폭기’의 한받씨가 공연을 하고 있다.






‘뭐 하는 사람들인가? 장난하나?’ 이들의 공연은 장난 맞다. 폼 그만 잡고 놀자는 것이다. 장난이 아닌 것도 맞다. 이들에겐 세상에 말 걸기이거나, 이상을 구체화해보는 진지한 과정이기도 하다. 어찌됐건 ‘노래는 이래야 한다’, ‘이럴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이나 기대를 걸다간 허방 딛는다. 당신이 무엇을 기대하건 그 이상이거나 그 이하다. 이 공연에 임하는 관객의 준비물을 굳이 꼽자면 말랑말랑한 뇌와 세상의 질서 밖으로 곁눈질하고픈 산만함 정도다.

지난 10일 밤 9시 서울 홍대 앞 클럽 ‘레이디 피쉬’ 무대 한가운데 원맨밴드 ‘아마추어 증폭기’(본명 한받·31)가 섰다. 너덜너덜한 붉은 스웨터에 체크 무늬 치마를 입고 분홍색 스타킹을 신었다. 단발머리 가발은 눈을 가렸다. 통기타를 맨 그는 마이크를 잡고 기다린다. 관객 30여명은 관심 없이 딴청이다.


장난 맞다…장난 아닌 것도 맞다

‘아마추어 증폭기’의 노래는 2분을 넘지 않는다. 코드 2~3개로 이뤄진다. 그 노래가 그 노래다. 기타도 징징 긁어내릴 뿐이다. 노랫말과 가창 방법만 바뀐다. “치킨은 ‘호식이 두 마리’가 최고야. ‘호식이 두 마리’ 치킨을 먹는다.”(‘디드로, 호식이 두마리 치킨’) “머리에 노란 꽃 꼽고 내게 고백하네, 야 이 개새끼야 나는 니가 참 좋아.”(‘궁중평화단’)… 20분 사이 6~7곡이 지나갔다. 때론 격정적이고 중독성도 있다. 심각하게 해석하자면 포크와 펑크, 넝마주의와 글램룩(가수 보이조지처럼 성별 구별이 모호하도록 화려하게 입는 것)의 산술평균에 백터를 가미해 미적분한 뒤 로그를 씌운 절묘한 결합이지만,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감사합니다.” 끝이다. “푸홧홧”, “우와.”

‘아마추어 증폭기’에 대한 사실들을 구성해보면 이렇다. 대학 전자공학과에 들어갔다가 바로 그만뒀다. 벤처회사에 다녔는데 자신이나 사람들을 속이는 것 같아 중국 상하이로 도망갔다. 동유럽까지 쭉 가려 했는데 가족들이 전화하는 바람에 돌아왔다. 자취방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다 감동해 ‘아마추어 증폭기’ 밴드를 결성했다. 홍대 앞 프리마켓 등 야외공연을 한달에 9~12차례 벌인다. 고등학교 때부터 단편영화 23편을 평균 제작비 5만원을 들여 만들어 왔다. 앨범 <극좌표>와 <29살 자위대>를 냈다. 지금은 한국종합예술학교 영화과 조교이고, 직업난에는 기타라고 쓴다.


“알아서들 즐기세요”





‘아마추어 증폭기’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거칠고 폭력적으로 유추해본 그는 이렇다. 공연 때 가발을 써야 마음이 편하도록 수줍어한다. 사람들과 주파수가 맞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다. 자신을 남인 듯 바라보며 꾸짖고 괴롭힌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라고 믿을 만큼 자괴감이 컸다. 노래는 자기 긍정의 수단이며 세상과의 악수다. “공연을 하면 공간과 관객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요. 내 안에 녹슬어 있던 기어들이 막 돌아가죠. 몸도 마음도 변해요. 소통은 일종의 환상이지만 스쳐지나가면서 역동적인 에너지가 나오죠.” ‘아마추어 증폭기’는 기계적이지 않은 느낌이 강하도록 붙인 이름이다. 곡도 단도직입적이고 원초적인 효과를 노려 단순하게 만든다. 물론 기타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추어 증폭기’의 노래엔 그래도 제목은 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쭈어쩡 이어 파렌하이트’라는 밴드의 공연은 이마저도 없다. 노랫말이고 멜로디고 온통 즉흥이다. 보컬 유창운(31·한국종합예술학교 애니메이션과)이 종이 쪽지들을 마이크에 붙였다. 노랫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참고하려는 것이다. ‘아마추어 증폭기’는 이 밴드에서 베이스를 맡았다. “알아서들 즐기세요.”





유병서(24·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이론)가 드럼으로 박자를 넣었다. 기다렸다가 백재중(31·한국종합예술학교 애니메이션과)의 기타가 끼어들어 징징거렸다. 유창운은 시집을 읽다 맥주를 마시고 외마디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4층도 땅에 5층도 땅에 8층도 땅에 당혹스럽네~.” 사실 당혹스러운 건 그가 아니다. 첫 곡이 40분 동안 이어지더니 느닷없이 “끝인데요” 선언이 튀어나온다. “와” 어떤 이는 환호하고 몇몇은 공연장 밖으로 나갔다. 별다를 것 없는 두 번째 곡이 끝난 뒤 한 관객이 ‘앙코르’를 외쳤다가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그래도 밴드는 앙코르에 응했다. “이건 제목을 뭐로 하지?” 보컬 유창운이 묻는데 다른 멤버들은 대답 없이 그냥 연주 시작한다. 연주가 무르익고 신이 난 보컬이 관객을 보며 “다 같이”를 외치는데 도대체 어떻게 다 같이 하란 말인지….

노랫말을 열심히 들으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건 관객 마음인데 미리 말해두자면 헛수고다. 중국어(한자로는 좌정)와 영어에 독일어까지 섞은 이 밴드의 이름 자체가 난센스다. 보컬이 읽는 시집도 그냥 집어든 거다.

그런데 이 밴드, 진지하다. 같이 살면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답변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보컬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는 기타나 베이스가 뒤로 물러나요. 불협화음도 나오지만 그것도 신나요. 배타적으로 굴지 않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거든요.”(유창운)


다같이? 어떻게 다같이…

이 밴드는 그들에게도 가상공간이다. 현실에선 백재중은 <차세대 과학교과서>의 일러스트를 그린다. ‘하이킥’이란 ‘정식’ 밴드의 멤버이기도 하다. 유창운은 <두부>라는 만화책을 냈다. 30개 나라를 여행한 유병서는 ‘리얼심볼릭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디제이 활동을 한다.

‘…파렌하이트’는 강자나 보편적인 질서가 나머지 목소리를 잡아먹는 현실에서 붕붕 떠있는 밴드다. 같이 뜨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 음악이 불친절하고 폭력적이죠? 그러면 그냥 화를 내세요. 그 자체가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니까요.”


글·사진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875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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